모세의 생애 – 개요
성경이 제공하는 모세의 생애와 이야기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아우르며 그 어떤 인물보다 방대하다. 모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살아생전 기록된 4권의 책에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도 모세 사후에 기록된 역사서, 시편, 신약성경의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등 성경 전반에 걸쳐 모세의 삶과 행적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고고학적 연구 결과, 성경에 기록된 모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흡사하다는 것이 인정되어 그 실재성이 입증되었다.
성경이 전하는 모세의 일생과 전기(傳記)를 들여다보면 그의 생애에 두 번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틱한 점은 그 주기가 정확하게 40년이라는 것, 두 번의 터닝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모세의 삶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40년 주기로 전혀 다른 모습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한 획을 그은 선지자, 모세의 연대기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40년 주기의 모세의 일생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이집트 왕자(탄생-40세)
모세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기는 B.C. 1500년경으로, 그 배경은 고대 이집트다. 이민족 통치자인 힉소스(Hyksos) 왕조가 축출된 후 신왕국 시대 제18왕조 때로 추정하고 있다. 모세의 조상은 그로부터 약 400년 전, 이집트와 가나안에 닥친 7년간의 대기근 때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 왕궁에서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였다.
이스라엘 민족(히브리 민족)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에 위치한 고센 지역에 정착한 후 꽤 오랫동안 이민자로서의 삶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통치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 동안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강대해졌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번성에 위기감을 느끼고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곡식을 저장할 국고성(國庫城, Store city)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강제 동원되어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는 일, 농사 등 여러 가지 노동으로 혹사당했다. 이어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산아제한을 위해 극단적인 정책을 펼친다. 신생아 중 남아의 경우에는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모세가 태어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모세는 레위 가문에서 태어났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레위 지파 고핫(그핫)의 아들이고, 어머니 요게벳은 레위의 딸이다. 그들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 아론과 미리암을 얻었다. 차자(次子)를 얻은 후 요게벳은 아이의 준수함을 보고 3개월간 몰래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갈대 바구니에 넣어 나일 강변 갈대 사이에 두었다.
때마침 파라오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바구니 안에서 울고 있던 아기를 발견하고는 측은하게 여기고 양자로 삼고자 한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유모로 요게벳을 소개했고, 결국 모세는 친어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모세가 제법 자랐을 때, 요게벳은 파라오의 공주에게 아이 모세를 데려갔다. 공주는 아이를 양자로 들여 물에서 건진 아이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 성장기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사도행전에는 스데반의 연설 속에 모세가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면서 이집트의 모든 학문을 배워 유능하고 뛰어났다고 전하고 있다(사도행전 7:20~22).
미디안 광야의 목자(40세-80세)
모세는 40세가 되었을 때 왕궁 밖으로 나가 히브리인들의 건설현장에 갔다가 동족이 노역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모세는 그곳에서 동족 한 사람이 이집트 감독관에게 억울하게 매를 맞으며 학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이집트인을 죽이고 모래 속에 묻었다. 스데반은 모세가 이때 동족의 사정을 돌아볼 생각이 났고, 압제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사도행전 7:23~24).
이튿날 모세가 다시 현장에 가서 보니 히브리인 둘이 싸우고 있었다. 모세는 먼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왜 동족을 때리냐며 중재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전날 모세가 이집트인을 죽인 것처럼 이제 자신도 죽일 작정이냐며 위협했다. 모세는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일은 파라오의 귀에까지 들어가 파라오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해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반도 근처의 미디안으로 도망쳤다. 어느 날 우물가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르우엘)의 딸들을 도와준 대가로 그의 집에 정착하게 된 모세는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두 아들(게르솜, 엘레에셀)을 얻었다. 이집트 왕궁에서 40년간 화려한 삶을 살던 모세는 이제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목자 신분으로 40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80세-120세)
모세의 생애에서 하이라이트는 80세 이후라 할 수 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들을 돌보며 유목 생활을 하는 동안 이집트의 파라오가 죽었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더욱 고된 노역으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돌아보셨다고 전한다.
미디안에 거한 지 40년 후,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돌보던 중 광야 서편의 호렙산(시내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서 종살이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셨다. 모세는 언변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으나 하나님께서는 도와주겠다며 이집트로 가라고 재촉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40년 만에 이집트로 돌아간 모세는 파라오를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명을 거절한 대가로 열 가지 재앙을 당하게 된다. 파라오는 마지막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을 당한 후에야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이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 이집트에 정착한 지 약 400년 만의 일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무리를 이끌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한다. 출애굽 후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가르고 바위에서 물을 내는 등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혹은 원망할 때마다 기사를 보여준다.
여러 가지 사건과 우여곡절 속에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칠 때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그의 지위를 물려준다. 그리고 가나안 땅이 바라다보이는 느보산에서 120년의 생을 마감한다. 성경은 모세가 죽었을 때 그의 눈이 약하지 않았고 기력도 다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간 애도했다고 전하고 있다(신명기 34:7~8).
모세의 생애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모세의 생애와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약성경은 장차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등장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신명기 18:18~19). 그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님이다(사도행전 3:20~23). 모세가 탄생했을 때 파라오에 의해 유아 학살이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의 상황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모세와 예수님의 오묘한 조화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애 속에 깊은 뜻을 담아두셨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성경이 전하는 모세라는 인물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 모세, 두산백과
- 히브리 민족 – 끝나지 않은 경전, 시공사